로스트이브

로스트이브

 


최초의 영장류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인간은 자만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강철과 썩 친하다고 생각했었으니. 강철은 인간과 친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걸 인간이 알아차리게 된 건, 우주로 진출한 지 대략 두 번째의 천년기에 접어 든 때였다.

나는 허공으로 내던져졌다. 전투 개시 전의 침묵이라는 갈채로 힘껏 고양된 연대감이 산산이 부서졌다. 목전에 승리가 있을 거라는 상상은 하지 않았다. 형제들 사이에 흐르는 낙관적인 기대감을 믿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쉽게 끝장이 날 줄은 몰랐다.

첫째 날.
정신을 차렸을 때, 제 2함교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고물의 실드를 뚫은 탄환이 함체를 스쳐지나가다 폭발했고, 그 상처사이로 파편을 쏟아부었다. 선조들이 10세대인가 전에 경험했다던 파열탄이었다. 우리 배들은 10세대를 전후해서 질량무기보다는 광학무기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세대에서는 질량무기에 대처하고 있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겠지.
부서진 파편들은 문자 그대로 배를 할퀴고 지나갔다. 좌현 중력노櫓 8개 중 4개가, 우현은 2개가 부서졌으니, 출력은 반 이상이 떨어진 상태였다. 워프드라이브를 작동시킬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문제는 추진계 뿐만이 아니었다. 통신이 완전히 침묵한 것으로 보건대 파편은 1함교를 갈기갈기 찢어 수병 모두를 즉사시킨 것 같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자기첨예화로 극도로 날카로워진 파편이 배 중심부, 가장 안전한 곳에 있는 ‘요람’을 파괴했던 것이다. ‘요람’에서 생육중이던 수십의 어린 형제들은 피곤죽이 되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전열전투는 아직 가능했을지도 모르나, 인류의 정충역할을 이제 포기해야 했다. 또다시, 여기 허공속에 하나의 가능성이 파괴된 것이다.
물론, 사티리콘의 살아남은 승조원들 운이 좋았던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망그로브전투. 그러니까 모래시계성운에서 펼쳐진 대규모 전투에 참여한 인류의 전투함들은 싸그리 몰살 당했으니까. 더 이상의 구조신호도, 전투신호도 없었다. 나는 함내의 나머지 구역과 소통을 시도했으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단 한군데를 빼고는.
“여기는 식당. 2함교는 모두 전멸인가?” 잡음이 끼어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식당에서 이렇게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뻔했다. 반가운 목소리. 산야. 30살의 노인이자, 함에서 4번째로 나이가 많은 나의 형제이며, 내 바로 아래 침대에서 생활하는 형제였다.
“이쪽은 2함교. 전탐사 소노입니다.” “반갑군! 식당으로 와줘. 올 수 있다면.” “해보겠습니다.”
나는 아직은 맞지 않아 헐거운 우주복을 허우적 거리며 중앙통로로 향하는 문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질량탄의 파편에 너덜너덜해진 함내 곳곳은 이미 경화수지로 봉합이 되어 있었지만, 림프배선에서 흘러나온 구동액이 바닥에 흥건했다. 아직 구동계는 살아 있었다. 미약하긴 하지만, 전력시설들도 대부분 온전했다. 다만, 전투배치 중, 조금이라도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안전한 요람으로 대피했던 것이 화근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전투함교인 1함교, 예비함교인 2함교, 공회당, 요람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요람과 함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1함교에 아이들을 대피시킨 상태였으니까, 파편하나가 1함교를 뚫고 지나갈 때, 재수가 없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통신침묵 상태가 계속될 리 없었으니.
시체들을 뒤로 하고 중앙통로로 나가자, 중력이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역사책에 따르면, 함내의 중력은 모성의 1/6이라고 한다. 모성에 살던 선조들은 우리보다 더욱 강한 중력에서 살았기 때문에 수명도 훨씬 길었지만, 자라는 데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다고 한다. 
중앙통로에는 핏방울과 시체들이 즐비했다. 경화수지 속에서 그대로 굳은 누군가의 팔다리와 내장을 보는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대로 늙어 죽었더라면 합성로에서 형제들의 양식으로 화했을 소중한 단백질들이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차디찬 우주공간으로 내던져져 얼어붙었겠지만.
사티리콘의 모함은 마더44로 알려져 있다. 어떤 이들은 사티리콘의 유려하면서도 사나운 모습을 보건대 취향이 남다른 마더십 51의 자식이라고도 한다. 뭐 그건 어찌되든 상관없다.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를 확정짓는 다는 것은 인류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전혀 바람직하지 않으니까.
어쨌든 우리세대는 마더십을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다. 함장이, 선창너머로 펼쳐진 빛무리들을 가리키며 “저기에 마더십이 있다.”라고 해봤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내 또래의 형제들은 눈을 빛내며 대모님을 숭앙하는 눈빛을 띄었지만.
사티리콘은 함체의 이물부터 고물까지 쭉 뻗은 중앙통로를 중심으로 주위에 전투구역과 거주구역이 존재했다. 그랬기에 눈이 멀더라도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짚고 있는 곳은 요람이 존재했던 구역이다.
“끔찍하군.”
경화수지가 부풀어 있었으나, 다 채우지 못한 균열안으로 요람의 광경이 보였다. 파편이 양수탱크를 부수고 태반들을 파괴하고, 어린 형제들을 짓이겨 놨던 탓에 요람안은 피거품으로 흥건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크고 작은 전투를 여러번 겪었었다. 형제들이 하나 둘 죽어갈 때 마다, 우리는 숙연한 가운데 의식을 치뤘었다. 인류가 어떻게 모성, 푸른 별을 떠나 우주로 진출했는지, 어떻게 타이탄과 마주쳤고 어떻게 싸워왔는지, 앞으로 우리 인류는 어떻게 승리할 것인지, 그리고 그 동안 희생되고 미래를 위한 길을 연 형제들에 대한 찬송을 불렀다. 낮은 북소리의 박동도, 노랫소리도 없었기 때문일까, 피와 살점으로 변한 형제들에겐 안됐다는 감정 이외의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승에서 말하는 숭고한 생존의 의무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누군가와.
피바다가 된 요람을 지나자 식당에 이르렀다. 식당앞으로는 병기고와 숙사가 존재했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 그 앞으로는 생존자가 존재할 것 같지가 않았다. 엄청난 균열을 메운 경화수지로 보건대 앞은 진공의 바다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반쯤 열린 채로 부서진 문을 지나, 배급소가 있는 중앙회랑을 지난 뒤에 소리를 쳤다.
“산야! 거기 있습니까?!”
아직 공기는 존재했으니까, 나는 우주복의 스피커를 최대한으로 올렸다. 산야가 대답해주길 바랐다. 사티리콘의 형제들의 계보를 따져본다면, 산야와 나는 대략 7세대 정도 차이가 났다. 나는 7살, 산야는 30이었다. 게다가 산야는 원래 사티리콘 출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혈통을 따진다면 마더십77쪽이었다. 원래 다른 배의 전기어사戰機御使였으나 10년전, 전투에서 한쪽 손을 비롯, 공갑攻甲을 잃은 뒤, 더 이상 비행할 수 없게 되어 사티리콘의 식당에서 요리를 하게 된 늙은 남자였다. 우리들 같은 어린 형제들에게 여러번 전투를 겪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로울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형제들은 그를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는 외부인이고, 엄밀히 말하면 형제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계통이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마음에 좋았다.
“소노! 여기다! ”
나는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 테이블을 박차며 소리가 들린 쪽으로 뛰었다. 중력로가 고장난 터라, 함교쪽에서 멀어질수록 약해지는 중력장 때문에 식당은 무중력과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는 수준이었다.
“산야, 여기입니까?”
소리가 들린 곳은 조리실 옆 조미료와 부식류를 넣어두는 창고였다. 조리실 바로 앞에서 이리저리 뒤엉킨 시체들이 함내를 강타한 파편에 찢기는 동안 운 좋게 부식창고는 불운을 비켜간 모양이었다.
산야가 있는 곳은 파이프가 무참하게 구겨져 버린 창고의 안이었다. 아마 구겨진 파이프가 문을 여는 것을 막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다행이었을 것이다. 아마 처음의 피격에 당황해서 식당으로 나왔더라면 파편에 휩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다친 데는 없습니까? 곧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레이저 토치를 꺼냈다. 지속시간 10분의 간이용이었지만 파이프정도를 절단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파이프 틈 사이로 산야가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 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익숙한 모습이었다.
내가 살아났다는 것보다, 산야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더 안도감이 들었다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일이지만.
“어서 꺼내줘. 부식창고에서 죽는 것은 정말 사양이야.”
“아직 멀쩡한데요 뭘.”
나는 형제들의 인사법인 가슴을 쿵하고 친 뒤 주먹을 마주 치는 방식으로 반가움을 대신했다.


사티리콘의 형제들은 대략 500을 헤아렸다. 함의 형제들에겐 항렬이란게 있다. 이 습속은 오래전 모성의 한 귀퉁이에 있는 지역에서부터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짧은 생에서 연장자들을 대우하지 않으면 그들의 경험을 우리 것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앞선 자들을 존경하고 대우한다. 그리고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배우고자 노력하고, 또한 그것을 후대에 전하고자 노력한다.

요람은 한번에 200명씩을 낳았고, 다음번 형제들이 요람에서 태어날 때까지 그 중 100명이 살아 남았다. 그 다음번에는 30명이 살아남는다. 우리 배의 경우는 대략 이러했다. 30명 중 마지막으로 남는 자들은 항렬을 대표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긴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였다. 최후의 형제들은 대형으로 불리며 스페르마십에 태워져 허공을 향해 발사 되는 것이다. 전 우주에 퍼져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어떤 모선에서 발견되길 바라며.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마더44가 파괴된 것같았다. 수천의 함들의 어머니, 마더44. 저 허공의 어딘가 마더십의 잔해가 있으리라 짐작되었다. 전투에서 파괴된 수천의 함선과 함께.
내 기억에 의존하자면, 전투의 전개는 단순했다. 승리가 확신되었던 첫 번째 전투에서 대파당한 함대는 훗날을 기약하며,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모래시계 성운 외곽으로 쫓긴 마더십44와 그 호위를 맡은 전투함들은 마더십을 최대한 멀리 도망시키는 동안, 시간을 벌기로 했었다. 어쨌든 마더십이 있는한 전투를 계속할 수 있었으니까. 마더십을 도망시키고 나머지 병력이 모두 전멸한다 해도, 훗날을 기약할 수 있었으므로, 함대의 지휘부는 기꺼이 마더십을 위해 희생하기로 했다.
우리, 형제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화력을 집중했었다. 타이탄의 사고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마더십의 도피방향을 알 수 없도록 비스듬한 방향에서 종심진을 펼쳤다. 우리가 거는 것은 좁은 영역에 집중한 화력으로 최대한 타이탄의 돌격을 저지하는 것이었고, 잠시나마 우리는 마더십을 도망시킨다는 작전도 성공하고, 함대도 보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선두가 다양한 단위로 부스러져 사라지는 것엔 아랑곳 하지 않은 타이탄들은 특유의 쐐기꼴 진형으로 충돌해왔고 그 방향에서 비껴선 함에겐 예의 질량탄을 비처럼 쏟아부었으니까. 일찌감치 사태를 파악한 전대장은 이탈을 명령했지만 이탈을 시작한 지 몇분도 되지 않아 명중탄을 먹은 나머지 이렇게 된 것이었다. 아주 깔끔하게.
“무엇을 생각하나, 어린 형제.”
산야가 내게 물었다.
“전투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간 전투를 생각하는 것은 다음번 전투의 기약이 있을 때만이겠지. 지금은 우리가 남은 생을 어떻게 인류를 위해 사용할지 생각해야 한다. 다음번의 전투는 아마 없을 것이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나는 피투성이가 된 함교를 둘러보았다. 단지 정화제를 뿌리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게, 형제. 살아남은 배가 있다면, 접촉해서 생존자를 구하고 이탈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유전자를 보내야하네. 마더십으로.”
머리위로 다른 배의 잔해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뼈대만 남고 부서진 함체는 어느 배인지 조차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끔찍했다. 만약 탄환이 직격했더라면, 사티리콘도 저런 꼴이 되었겠지. 아니 내가 살아남은것도 정말 엄청난 확률이 아닌가 했다. 그러나 그 확률도 이제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사티리콘은 전투함으로써의 능력은 남아 있을지 모르나, 더 이상 인류의 정충은 되지 못했다. 요람이 파괴되면 끝이다.
“구동계의 자율복구는 여기까지입니다. 더 이상 손댈거리가 없어요.”
2명으로 함을 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그 불가능의 확률에 비해 산야와 내가 함의 기능을 더 회복시킬 불가능의 확률은 더 낮을 것이다.
“추진계는?”
“중력노의 출력은 70%까지 가능합니다.”
“속력의 절반밖에 내지 못하겠군.”
나는 그 절반에도 회의적이었다.
“형제, 과연 살아남은 배가 있을까요.”
“있을 것이네. 나도 생애토록 그렇게 많은 배가 전투에 참가한 것은 처음 봤지만 항상 생존자는 있었으니.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이야.”
“제 생각엔 살아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형제, 희망을 잃지 말게. 인류의 가장 큰 무기는 희망일세. 희망은 가능성이란 이름으로 도처에 널려있으니.”
글쎄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선조들에게서 선조들에게, 그리고 우리 후손들에게서 후손들에게. 우리의 유전자를 남겨 계속 전투를 하는 것이 중요하네. 타이탄과 인류, 어느쪽이 생존하는 가 하는 문제의 결착을 짓기 위해서라도.”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내가 죽고 없어진 뒤  인류의 존속따위야 어찌되든 알게 무엇인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따분한 역사수업 내내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선조들이 전투에서 계속 패배했으니, 후대의 우리들에게 이런 큰 짐을 떠 넘긴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생각을 입 밖에 낼 수는 없다.
“자 그럼, 엔진 점화. 사티리콘 재기동.”
우리는 사티리콘의 조함기능을 최소화 했다. 현재까지 함내에서 살아서 대답한 사람이 산야와 나 둘 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개 전탐사에 불과했지만, 산야는 전기어사로 많은 공훈을 세운 경험많은 형제였다. 비록 손을 잃었지만 지금의 경우는 손이 하나든 둘이든 차이가 없었다. 내가 그의 지시를 받아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으로 사티리콘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티리콘이 점점 속력을 내자, 기분이 좋아졌다. 차라리 이대로 산야와 둘이서 우주를 누비는 것도 괜찮겠지. 그 순간 다른 생존자들은 차라리 발견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는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구조신호가 금방 포착되었다.

1광시 거리에서 구조신호를 발견한 우리는 천천히 다가갔다. 아직 타이탄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지금 우리 둘만으로는 단순한 조함조차도 버거운 일이었다. 나는 항성의 그림자로 들어가서 자기풍을 뒤집어 쓰며 주회하다가 튀어나가자고 주장했고 산야는 관성만으로 날아가 트랙터빔이 아닌 그물만으로 회수하자고 했다.
불행한 일이었으나, 인류는 아직 타이탄의 사고를 이해하지 못했다. 타이탄과 의사소통을 시도해본 적은 무수히 많았지만, 대답은 단 하나, ‘공격’ 뿐이었다. 그러니 타이탄이 우리의 이런 기만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의문이었다. 게다가 이 공역에 타이탄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도.
“여기는 총기함 보헤미아. 나는 구다이. 44함대의 참모장이다.”
통신채널에 잡힌 목소리는 껄끄럽게 느껴졌다. 마음 속 한 켠에서는 참모장따위야 어찌되든 알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자리잡았지만 산야는 그런 내 생각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천천히 접근을 시도했다. 사티리콘은 관성을 이용해 날아간 다음, 전자그물을 펼쳐 총기함 보헤미아로 추정되는 우주쓰레기를 건져냈다. 구다이가 탔던 탈출포드는 사출덱과 함께 구겨져 있었지만, 운이 좋았던 탓인지 목숨만은 붙어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내가 함대의 최선임자가 되는 군. 함대재건이라는 임무가 무겁게 느껴져. 어쨌든 고맙네. 조금만 늦었으면 항성으로 빨려들어갔거나 다른 잔해에 부딪쳤겠지.”
아니나 다를까, 포드에서 기어나온 구다이는 자신이 최선임자임을 확인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지금은 우선 생존자를 구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온전한 함이 있을지 의문이니, 최대한 빨리 행동해야 합니다.”
“1시간 전에 성운쪽에서 잡히는 구조신호를 받았네. 그쪽에도 생존자가 있는 모양이야.”
내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나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름살이 가득한 오만한 눈초리부터 하얗게 새어 늘어진 눈썹과 흘러내린 주름살들마저도. 그는 계통상으로 지적능력이 좀더 강화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므로 평생 함교에서 지내왔을 것이다. 또 나는 공간지각능력이 더 우수했으므로 전탐사가 되었을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짐처럼 느껴졌다. 우수한 유전자를 가졌을지 모르지만, 유전자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런면에서 보면 전멸한 함대의 참모장이란 유전자가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비위상하게도, 구다이는 사티리콘의 함교에 들어서자 마자 함장의 자리에 몸을 뉘였다. 잠깐이나마 사티리콘의 함장역할을 수행했던 산야는 조타석에 앉아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합니까.”
“생존자를 구해야지.”
구다이는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요?”
“마더십을 찾아야지. 어딘가 마더44가 있을걸세. 함대의 재건을 위해선 그 수 밖엔 없네.”
“만약 마더44가 파괴되었다면 어떡합니까.”
나는 솔직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구다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린 형제, 그런 질문일랑 하지도 말게. 우리 인류의 미래는 마더십과 그 아들들에게 달려있으니 말이야. 마더44가 파괴되었다면 무한의 우주를 달려서라도 다른 마더십을 찾아내야 하네. 우리의 유전자를 후대를 위해 남기고, 총화단결하여 타이탄을 이 우주에서 박멸하는 것만이 우리 생존의 증명이니까.”
나는 더 할 말이 떠올랐지만, 갑자기 끼어든 구조신호를 확인하느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운쪽에서 날아오는 생각보다 많은 신호였다. 나는, 약간 실망했다.

전투 후 2일째. 정확하게는 전투개시후 7시간 후였지만, 날짜가 바뀐 탓이다.
두 번째는 꽤 많은 무리였다. 포함이 한 척, 순양함이 세척, 공작함이 세척. 온전한 공갑이 2기였다.
수천 척의 함대, 그리고 그보다 많은 수의 공갑 중에서 이 정도밖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다이는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하긴 이런 초라한 함대의 ‘총사령관’이니.
구다이의 강력한 주장으로 남은 함대의 기함인 사티리콘에서 열린 대책회의에는 각 함의 함교요원들이 참석했다. 통신으로 해도 될 회의를 굳이 이곳에서 연 것에는 구다이의 입김이 작용했다. 아마 구다이는 남은 생존자들에게서 맹세라도 받으려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지휘권을 확고히 하고 싶었던가. 그러나 다른 함의 형제들은 군 말없이 구다이의 명령에 따라 함교로 모였으니, 함대 참모장이라는 직함이 아직까지는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한줌 밖에 남지 않은 함대였더라도.
형제들은 모두 피곤한 얼굴이었다. 군데군데 피에 젖은 붕대를 두른 이도 있었다. 오히려 몸이 성한 나와 산야가 더 이상해보일 지경이었으니. 수십명이나 되는 함교요원들은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둥그렇게 둘러앉았고, 최연장자가 회의를 주제했다. 최연장자는 40살이 되었다는 순모도였다. 한쪽 팔이 잘려져 나갔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지만 눈빛은 정정해보였다.
“형제들, 우리 신성한 지구와 만물의 영장인 인류의 이름 앞에, 회의를 개최하겠다.”
이윽고 각 함의 상태와, 생존자들의 수, 가용한 병기를 알렸다. 생각했던 것 만큼 초라한 숫자의 나열이 지나가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할 차례가 되어, 구다이가 나섰다.
“형제들, 내 생각은 이러하다. 형제들 중 최고위인 내가 남은 함대의 지휘관이 되어, 마더44를 수색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마더44를 발견하고 무사히 철퇴작전을 수행하고서는 다음세대를 위해 함대를 재건해야 한다. 물론 시간은 오래 걸릴지 모른다. 우리의 승리를 위해선 더 많은 함대와 더 많은 형제들이 필요하다. 마더십은 우리에게 어머니와도 같다. 우리는 어머니를 되찾아, 다음 항렬의 우리 형제들을 받아 길러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지상명제가 아닌가. 이의를 제기할 형제 있는가?”
형제들은 아무말이 없었다.
“형제, 구다이의 말에 이의있는 형제는 없는 걸로 하겠다.”
구다이의 말은 정론이었다. 그가 남은 사람의 최고 지휘관이 되는 것에는 반대하고 싶었지만. 그는 우리 함대를 전멸로 몰아넣은 책임을 질 자가 아닌가? 함대의 지휘부는 모두 죽었다. 죽음은 축복이라고들 하나,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모두 우주의 먼지가 되었으니 남은 자인 구다이는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구다이는 손을 들고 말을 이었다.
“아마도 잘못된 작전 때문에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가질 형제들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알아달라. 나는 살아남은 자로서 함대를 재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내가 책임져야 할 문제다. 내게 책임을 질 기회를 달라. 만약, 내가 사출형을 받게된다고 한들, 또 하나의 가능성을 잃어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가. 나는 책임을 통감하고, 재건에 남은 생을 바치겠다. 위기상황이니 우리는 봉인된 수명조작을 통해서 모두의 수명을 늘여야된다고 생각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되도록 오래살아남아 전투의 교훈을 남겨야 된다고 생각한다.”
“구다이의 말에 이의있는 형제가 있는가?”
순모도의 말에 모두 침묵하였다. 모두의 마음속에 연장자라는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 모두가, 오래도록 살아남아 함대의 중추부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우러러 존경하는 구세대가 될 것이다. 그런 유혹은 나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올 정도였으니 아마 다른 형제들도 같으리라. 나도 상상해보았다. 나라고 어찌 꿈꿔보지 않았겠는가.
전투에서 큰 공훈을 세운 자들은 마더십으로 보내져 유전자를 남겨야 했다. 그러나 나는 구다이가 말한 수명조작에 대해서는 처음 들었다. 인류 대부분은 40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 30살이 되면 급속하게 늙기 시작해, 대부분 1~2년 안에 죽게 된다. 늙은자들은 합성로에 넣어져 다시 남은 자들을 위한 음식이 된다. 나는 아직 어렸으므로 죽음에 대해 그리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으나, 오래도록 살아남아, 존경받는 연장자가 되어 우주를 누빈다는 생각은 솔깃했다. 솔직히 말해.
“그럼 아무도 이의가 없는 것으로 한다. 아마 수명연장에 대해 알고 있는 형제들은 없으리라 믿는다. 알다시피, 마더44에는 ‘자궁’이 존재한다. 그곳은 우리 형제들의 유전자를 조합해 다음, 그리고 또 다음 항렬의 유전자를 만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무수한 기술이 존재한다. 전범에 따르면 전멸의 위기에 처한 함대의 생존자는 수명연장을 통해 다음 세대를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구다이의 말은 합당하다.”
나는 산야를 돌아보았다. 산야는 들뜬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피곤한 표정이었달까.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궁금해졌다.
“또한 우리 중의 한명이 마더가 되어야 한다. 후대를 위한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우리 중 하나는 마더가 되어 마더십에 남아야 한다. 나는 오래전에 마더십과 접촉한 적이 있다. 마더십의 중추부에는 ‘마더’라 불리는 까마득히 오래전 항렬의 형제가 존재한다. 그가 우리들의 어머니로 함대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함대가 모두 사라졌으니 전범에 따라 우리는 새로운 어머니를 선출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한한 희생을 통해, 자신의 아들을 우주로 보내는 어머니를.”
“그렇다면 우리 중의 한 명이 마더십으로 가게 되는 겁니까?”
“그렇다 형제. 마더는 마더십에 홀로 남아야 한다.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우주를 누빌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희생은 다음 세대의 형제들을 위해서다.”
나는 상상했다. 마더십에 홀로 남아 무수히 많은 형제들의 유전자를 우주에 퍼트릴 마더를. 그 생각을 하자 본능적 공포감이 밀려왔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내가 본능적인 공포감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할 때 가장 편안하다고 느낀다는 이유가 있었다. 비록 수많은 형제들이 마더를 호위하겠지만 그것은 진공을 넘은 연대감이었다. 나는 혼자 남는다는 것이 상상이 되질 않았다. 우리는 항상 형제들과 함께였다. 홀로라는 말은 우리에겐 죽음과 마찬가지였으니. 그렇다면 사출형과 다를게 무엇인가?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산야가 물었다.
“그럼 누가 마더가 되는 거지?”
산야의 그 질문은 주효했다. 우리, 형제들, 우성 영장류의 정충들은 드넓은 우주를 휘저으며 인류의 번성을 일궈내는 존재였다. 만약, 돈모잔의 말을 믿는 다면 우리 중 하나는 마더가 되어, 마더십에 갖히게 된다. 그리고 타이탄과의 전투를 위해 떠나는 형제들의 뒤를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마더가 될 수 없다.”
구다이는 그렇게 중얼 거렸다. 우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걸 느끼곤 좌중을 둘러 보았다.
“함대가 재건 되면, 나는 지휘를 해야한다. 그 뿐만 아니다. 타이탄의 주력을 피해 후퇴를 수행 할 사람이 필요하다. 난 마더가 될 수 없어. 아니 되어서는 안된다.”
아무도 이의의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마음 속으로 각자의 이유를 떠올리고 있었다. 구다이는 선수를 친 것이다. 함대의 참모장이라는 그의 직함은 여전히 생존자들에게 효과가 있었다.
“순모도, 가장 나이많은 형제여, 우리가 읽을 수 없는 전범을 읽을 수 있는 형제여. 그렇다면 마더의 자격요건은 어떻게 됩니까?”
순모도는 나를 쳐다보았다.
“잘 말해주었다. 형제들. 마더의 자격요건은 없다. 마더는 우리와는 다르다. 마더십의 자궁에 자리잡는 순간 그는 우리와는 다른 존재가 된다. 마더에게 필요한 자격요건은 무한한 희생정신이다. 모든 함대의 형제들이 가진 희생정신보다 더 큰 희생정신이 필요하다. 다만, 너무 나이든 자는 마더십과의 동화가 위험할 수도 있다. 또한 너무 어린 형제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가 무한의 시간속에서 형제들의 어머니가 되겠는가? 누가 그 고독의 요새를 지킬 수 있겠는가?”
순모도의 말을 끝으로 회의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아무도 말이 없었으니까. 아마 모두가 홀로 남겨진다는 공포에 휩쌓여 자기가 마더가 될 수 없는 이유를 필사적으로 짜내고 있었을테니까. 그리고 우리는 마더의 결정을 뒤로 미룬 다음 각자의 함으로 돌아가 함의 보수에 전념하기로 했다. 침로를 마더십으로 향하고.

“산야. 홀로 남는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나와 산야는 둘만 남은 숙사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예전이었다면 50명이 시끌벅적하게 생활했을 숙사에는 우리 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텅빈 숙사에서 나는 여전히 산야의 윗 침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전투중에 홀로 남겨진 적이 한번 있었네. 그러니까, 내 공갑의 추진계가 고장났을 때였지. 우리 부대는 유격전을 수행하고 있었어 소행성의 무리에 숨어서, 우리를 쫓는 타이탄들을 종사의 사거리로 몰아넣는 임무를 위해서였지. 5발쯤 쏘았을 때였을까, 나는 내가 쏜 탄환이 작은 타이탄을 꿰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있었어. 그런데 타이탄도 나를 쐈던 것이지. 재빨리 회피기동에 들어가 피하긴 했어. 타이탄이 쏜 탄환이 내 공갑에 맞지 않고 소행성에 맞은 걸 알고 기뻐했지만, 그 파편이 튀겨 엔진에 맞았던 거야. 알다시피, 공갑엔 방어자장이 없네. 파편은 그대로 엔진에 부딪히며 온갖 기기를 정지시켰지. 그 뿐만이 아니라, 내 손목도 하나 가져가 버렸어. 그리고 나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혼자 남겨졌었고. 끔찍했지. 형제들과 싸울 수 없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아나? 아마 모를거야. 며칠 뒤에 구조되긴 했지만 조금만 늦었더라면 난 미쳐버렸을지 몰라.”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야와 나 단 둘만이 남아있어도 침묵에 짓눌리는 것 같았으니. 나는 함교에서 나만 살아남았을때의 감정을 떠올려 보았다. 오직 나의 목소리만 울려퍼질때의 그 고독과, 공허감. 그런데 며칠이라니.
“그럼 우리 중 누가 마더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런 고독을 견딜 용기를 가진 사람.”
“누가 그런 용기를 가지고 있을까요?”
“글쎄.”
“구다이에겐 없을 것 같아요.”
“그럴지도. 그러나 내게도 없을걸세.”
나는 침대옆으로 고개를 내밀어 산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산야, 설마 마더가 될 생각은 아니겠죠?”
“내게 그만한 용기가 없다는 걸 잘 알잖나.”
산야는 두손으로 손배게를 한 채로 웃어보였다.
“산야, 내 형제중에서 남은 형제는 당신 밖에 없어요.”
“무슨 소리인가... 우리에겐 수백명의 형제가 있잖나...”
“하지만 저의 똥오줌을 받아준 건 당신 밖에 없으니까요. 다른 함의 형제들은... 형제라는 느낌이 들지 않거든요.”
“그런말 해선 안돼. 인류는 모두 형제야. 우리는 싸워야해. 형제들이 없으면 어떻게 싸워서 이기겠다는 건가?”
“산야, 지구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역사시간에 배우지 않았나? 인류의 모성, 푸른 별.”
나는 역사시간에서 시각자료로 본 지구를 떠올렸다. 파란색으로 빛나는 모성. 지금은 파괴되고 없는 모성.
“인류의 어머니인 이브도 고독했을까요?”
“아버지인 아담이 있었으니 고독하진 않았겠지.”
“이브는 아들들이 전쟁터로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진 않았을테니 말이죠.”
역사는 말했다. 인류는 아담과 이브에서 출발했다고. 그 이전에도 영장류는 존재했지만, 아담과 이브를 최초의 부모로 꼽는 이유는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걸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아담과 이브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았다. 강철의 이로움을 알았고, 사냥을 할 줄 알았다. 그리고, 뱀의 지혜를 빼앗아 만물의 영장이 되는 길을 알았다. 그러나 뱀에게서 지혜를 빼앗은 건 이브다. 그렇다면 지금 나 뿐만 아니라 산야, 그리고 다른 형제들이 우주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게 된 까닭은 이브때문일까. 왜 이브의 자손, 여자들은 멸종했을까.
“산야, 여자는 왜 멸종했죠? 왜 인류의 두 종족 중 하나는 멸망했죠?”
“타이탄과의 싸움에서 여자들은 아이를 낳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고 역사시간에 배웠지.”
“그러나 이해되질 않아요. 그렇다면 굳이 마더십에 우리 형제들 중 하나를 유폐하고 형제들을 낳게만 한다면 여자랑 다를바가 없지 않나요.”
“글세...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 가령, 여자들은 한번에 한명씩 밖에 낳을 수 없지만 우리의 요람은 마더십에서 받은 유전자로 한번에 수십명씩 낳을 수 있으니.”
“너무 슬퍼요.”
“뭐가 말인가?”
나는 왜 슬픈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분명, 여자들이 사라진 이유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를 한 번에 한명씩 밖에 나을 수 없다는 이유만이라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렇게 무수히 형제들을 나아, 우주공간속에 피를 뿌리게 한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형제, 아니 이 경우에는 다른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자신의 후손들의 죽음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멸종한게 아닐까.
“옛날에는 어떻게 아이를 낳았을까요.”
“글세... 지금도 어떻게 아이를 만드는 지 자세히 모르는데 말야. 그때도 유전자를 합성하는 기술이 있었겠지.”
“모르는 것 투성이군요.”
“형제는 호기심이 너무 많아. 그래서 우리들은 형제를 돌연변이라고 불렀지. 이만 자두게. 내일은 해야할 일이 훨씬 많으니.”
“전범에 나와 있을까요?”
“전범을 우리가 읽을 수는 없는 것 잘 알잖나.”
“궁금해요.”
“그러나 연장자가 되면 읽을 수 있겠지. 오래도록 살아남아..”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죽는다. 그렇게 우리가 연장자가 되면, 우리는 무수한 형제들이 늙어 죽는 것을 봐야 한다는 것 아닌가. 만약, 우리가 수십, 수백배나 더 긴 세월동안 살아야 한다면? 함대의 재건은 몇 년이나, 아니 몇 세대나 걸리는 걸까.
“왜 우리들은 전범을 읽을 수 없는 거죠?”
산야는 말이 없었다. 나의 형제는 이미 잠든 채였다. 흰 머리가 희끗했고 수염이 덮수룩한 얼굴. 나와는 10항렬 정도 차이가 나는 나의 형제. 내 똥오줌을 받은 형제. 만약 산야가 마더가 된다면 나는 죽어버릴 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했다. 아마 다른 용감한 형제가 있을 것이다. 분명.

전투 후 4일째.
순모도가 죽었다. 첫 번째 회의를 주제하고, 뒤이은 화상회의를 계속해서 주제하던 순모도는 어젯밤에 잠든 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사인은 과다출혈같았지만-우리에겐 더 이상 선의船醫가 남아있질 않았으므로- 그는 수명을 누릴 만큼 누렸다. 애당초 그는 마더가 되기엔 너무 나이가 많았으므로 안심이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비교적 어린 편인 나는 어떨까? 요람에서 보낸 1년, 걸음마를 배우고, 홀로 서기까지의 1년. 우리 인류의 형제들은 3살이 되어서야 교육을 받기 시작해 5살에야 한명의 형제로 인정을 받는다. 나는 7살이었고 나는 너무 어렸다. 이제 고작 전탐사로 1년도 안되게 생활한 나는 마더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전투 후 7일째.
모래시계 성운의 잔해에서 떠돈 지 7일째가 되어서야 우리는 마더44의 신호를 수신했다. 내 생애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우리들의 모선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조금도 들뜨지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산야나, 구다이가 들떠 있었다. 그러나 비관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마더44가 성공적으로 도망쳤다면 아예 모래시계성운에서 발견되지 못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만약 이곳에서 발견되었다면 장거리 워프에 들어가기도 전에 파괴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초공간에서 타이탄들에게 발각되어 통상공간으로 튕겨져 나왔던가.
비록 나는 비록 7살의 어린 전탐사였지만 내가 더욱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내 판단은 적중했다. 마더44로 접근하는 타이탄이 있었던 것이다.

“당장 전투를 하자.”
산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가용한 함은 반, 중파된 함이 7척. 공갑이 2기. 하이퍼스코프에 비춰진 타이탄의 전열은 얼핏 보아도 충衝급이 10척이 넘었다. 통상적인 전투였다면 해 볼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전멸한 함대의 생존자들이었다. 1000명도 채 안되는 우리의 형제들을 확률이 희박한 무모한 싸움으로 소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을 입밖에 낼 수 없었다. 가끔 우리의 형제애는 독특하게 작용해, 서로 같이 죽음을 맞이 하지 않으면 안될 듯 달려들곤 했다. 기실, 모래시계성운의 전투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마더십들은 대등하다고 생각한 타이탄의 함대를 발견하고 선수를 쳤지만 우리를 꾀어내기 위한 미끼를 덮썩 물었던 것 뿐이다. 중력그늘에 숨어있던 타이탄의 격급 선두부대가 천척의 함대 중앙을 들이쳤다. 타이탄이 원거리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장기는 쐐기꼴 대형의 일제 돌격이었고, 우리 형제들은 일사분란한 사격전을 더 좋아했다. 물론, 타이탄들처럼 돌파를 선호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었으니, 형편없는 장갑과 우리가 ‘단말마’라고 부르길 좋아하는 1문의 주포를 장착한 공갑이 있었고, 전기어사 산야처럼 100단위의 타이탄을 해치운 형제들도 있었다. 드물긴 했지만.
그러나, 내 기억에 따르면 타이탄의 격擊급 선두부대들이 길게 늘어선 우리의 함열을 향해 뛰어들었을 때,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 주포는 모두 타이탄의 미끼들을 조준 중이었고, 우리는 발가벗겨진 어린아이와도 같은 상태였다.
나는 전탐데스크에 무수히 늘어가는 광점들을 기억해냈다. 나는 이물쪽 레이더를 담당하고 있었으므로, 반구에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한 광점들이 순간 무수히 빛나기 시작하더니 금새 레이더를 하얗게 뒤덮던 순간을 떠올렸다. 통사들이 비명을 질렀고, 메인스크린 위쪽 대화 채널들이 순식간에 침묵을 뜻하는 회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또 다시 전투란 말인가. 이 정도의 숫자로?
“그러면 이전의 전투에서 미끼를 물고 등 뒤를 비워둔 작전을 세운 형제는 누구입니까. 참모장님.”
구다이는 고개를 홱하고 돌렸다.
“내가 방금 듣기로는, 10살도 안된 새파란 애송이 형제가 내 작전을 비난한 것처럼 들리는데.”
좌중이 나를 주목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익숙치 않았으나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산야가 내 팔을 잡았지만.
“타이탄의 진행방향을 보건데, 마더44로 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함대를 보존해서 다른 마더십을 찾는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제는 지금 당장 전투를 하자고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인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사티리콘의 조함을 위해 다른 함에서 차출된 함교요원들은 기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인류에겐 겁쟁이도 필요없다.”
구다이는 무언의 말을 하는 듯 함교요원을 둘러보고 다시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린 형제여. 너는 지금 우리가 반드시 패배한다고 하지만,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우리가 지금 타이탄을 막아야 마더십과 접촉할 수 있다. 형제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다른 마더십을 찾다가 타이탄의 대부대와 조우 할 수도 있고, 마더16과 마더141은 이미 파괴되었을 수도 있다. 지금은 마더44를 지키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르게 보자면 전투에 참가했던 나머지 마더십을 찾는 것이나 마더44를 지키는 것이나 동일한 확률이 아닌가?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산야의 표정을 확인했다. 산야는 평소의 얼굴이었다. 나를 비난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럼 참모장님은, 어떡하실 셈입니까. 이 병력으로 어떻게 타이탄과 맞서 싸울 생각입니까?”
“인류에겐 불굴의 투지가 있다. 우리를 지금까지 지탱해온 승리의 신념으로 싸울 것이다. 왜냐하면”
구다이는 뜸을 들였다.
“그래야만 하니까.”
산야는 내 팔을 붙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은 구다이의 말에 동의한다는 게 아니었다. 이제 그만하라는 눈빛이었다.
“형제들, 모두 전투 배치!”
타이탄은 지금도 계속해서 마더십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대로 전진해 타이탄을 차단한다!”
1시간 후면 8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1시간 뒤에는 전투에 들어갈 참이었다.


구다이의 전술은 간단했다. 함들을 최대한 빨리 전진시켜, 현측 일제사격으로 타이탄의 돌격력을 소모시키고, 계속 사격으로 타이탄의 분견대를 파괴한다. 말은 쉬워보였다. 그러나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구다이조차. 산야는 포술반에 앉아 홀로 함내의 모든 현측 입자포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포문이 개방되고, 레이더에 하얀 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관측보다 두척이 많았다.
“신호하면 발사한다...”
형제들은 무슨 생각일까. 아무도 구다이의 고집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최후가 될지도 모를 싸움에 임하면서도. 오히려, 의문을 품고 있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정말 나는 나를 가르쳤던 형제들이 말하는 것처럼, 돌연변이일까.
“거리 0.1광시”
“전포, 예열개시.”
함교에서도 느낄 수 있는 진동이 울려퍼졌다. 반파에 가깝게 얻어맞은 사티리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숨결을 힘차게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산야를 돌아보았다. 산야는 무장장의 자리에서 단독으로 포문을 조작하고 있었다. 신속함은 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은 함교요원이 13명밖에 되질 않았으니.
“타이탄이 가속합니다.”
예의 충각전법으로 돌입해오고 있었다. 거리는 10광초까지 좁혀졌다.
“침로, 정확하게 T자 달성.”
“전탄발사.”
구다이의 목소리는 낮고도 침착했다. 그도 함대를 지휘해본 적은 없을 것이다만, 내가 힐끗 쳐다보았을 때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탄발사.”
복명복창에 이어 다시 다른 진동이 울려퍼졌고 우현쪽 창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레이다는 광점의 무리가 가까이 다가온걸 표시해주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패널위에 배율이 확대된 레이더를 표시했다. 타이탄은 우리의 포격에 아랑곳 하지 않고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우리의 함들이 한번에 발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입자포, 우주폭뢰, 중력미사일이 날아가는 궤적들이 선명했다.
“계속 발사해라, 선두부터 파괴해.”
사티리콘의 불안정한 중력장이 기우뚱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니 삐그덕하는 소리를 내며 기울어졌다. 회피기동에 함의 움직임을, 선내 중력장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온다.”
나는 레이더상에 길게 그어지는 선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다. 그 선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레이더 밖으로 사라졌다.
“피했다.”
누군가의 외침. 아직은 운이 남아 있었다. 사티리콘은 자율조종으로 들어가 표준 회피기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발아래를 쳐다보았다. 발 아래에선, 모래시계성운이 빛나고 있었다. 함교에서 전투스크린을 켠 채로 있으면 마치 우주공간에 둥실둥실 떠 있는 것 같았다. 반투명한 데스크와 패널들, 각종 스크린들이 허공에 떠 있고, 내 좌우와 앞뒤에 형제들이 보이지 않았다면 숨이 막혔을지도 모르는 광경. 아래로 떨어질 것 만 부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나는 발 밑을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적탄이 함을 스쳐 날아가는 장면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쿠르릉-
엄청난 진동파를 발생시키는 타이탄의 질량탄이 지나갔다. 아마 거리는 100M도 되지 않았겠지만 그 위력은 엄청났다. 일시적으로 나마 중화자장이 깨지기 직전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타이탄, 감속, 방향전환 전혀 없습니다.”
타이탄놈들, 그대로 밀어 붙일 생각이다. 선두에 선 놈이 실컷 두들겨 맞는 동안 뒤의 타이탄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나는 확대한 레이더의 타이탄들이 일렬로 달려드는 것을 보고 있었다. 단 한 대라도 돌파하면 끝이다.
“거리 3광초”
구다이가 설명한 작전에도 그에 대비한 계획은 있었다. 만약 놈들이 통상의 움직임대로 돌파를 시도한다면, 근거리에서 중력기뢰를 터트려 움직임을 멈추게 한다. 타이탄들의 유일한 약점 중 하나는 강력한 중력요동을 방사하는 우리의 중력기뢰가 근거리에서 폭발할 경우 짧게는 몇 초, 길게는 몇 분까지 멍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선조들은 그 이유를 그들의 함이 생명체와도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잠깐이나마 발을 묶어둘 수만 있다면 그들을 포위해서 사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중력기뢰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것이었고, 잘못하다가는 아군도 휘말리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거리2광초”
“놈들이 흩어집니다.”
구다이는 데스크를 탁-하고 쳤다. 그 순간 레이더의 타이탄들은 정확하게 부채꼴모양으로 퍼지며 우리들의 함을 향해 날아왔다. 의도는 명확했다. 그들은 우리의 각각의 배를 충각으로 두들길 셈이었던 것이다.
우현에서 다가오는 밝은 빛을 보았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기 전, 산야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노. 소노, 정신이 드나? 운이 좋군.”
내가 깨어났을 때 산야의 얼굴이 있길 바랐다면 정말 기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것은 한쪽 눈을 피 묻은 붕대로 가린 구다이의 잠든 얼굴이었다.
“어떻게 된거죠?”
“맞춰보게.”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리저리 구불구불하게 솟은 파이프와 배선이 창자처럼 이어져 있었다. 녹색등만이 어둡게 빛나는 좁은 공간. 산야의 목소리는 들렸지만 산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다, 내가 해먹에 감겨 있는 것을 깨달았다.
“여긴 어디죠?”
“내 공갑의 예비탄적재부지. 형제. 나머지 함교요원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아마 폭발에 휘말렸을지도. 5시간이나 지났는 데도 대답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죽었을거야. 함대의 나머지 인원들이 탈출을 시도할 수라도 있었던 것도 그나마 사티리콘이 덩치가 컸으니 마련이지. 참모장은 첫 번째 피탄에서 정신을 잃었고 말야. 하지만 운이 좋았네.”
“구다이를 왜 살려준 거죠?”
“아무도 참모장을 자신들의 탈출 포드에 실으려하지 않았으니까.”
형제를 내버리지 않는 것은 우리들의 본능같은 철칙이었지만, 나는 그에 반하는 질문을 했다. 평시였다면 반역죄로 사출형에 처해져도 할 말이 없었지만. 아마 나와 가장 가까운 형제인 산야는 그걸 헤아려 준것이리라.
“지금은 어디로 가는 거죠?”
“마더십으로. 우회궤도를 탔으니까, 발견되지 않기 위해.”
“앞으로 어쩔 셈이죠?”
“질문만 던지는 군.”
산야는 말이 없었다. 발끝쪽에서 빛이 들어왔다. 산야의 얼굴이 보였다. 산야의 머리뒤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헬멧을 쓰고 바이저로 얼굴이 반쯤 가려져 있었지만.
“괜찮나? 이상은 없어보이던데. 억세게 운이 좋군.”
“당신은요?”
“앞이 안보여.”
나는 침묵했다.
“다리도 하나 줄었고 말야. 무릎 밑으로 싹둑. 덕분에 가벼워졌어. 그것 말고는 멀쩡해”
“그런데 어떻게 조종하는 거죠?”
“공갑에 탈 때까지는 괜찮았어. 아마 파편에 얻어 맞은 탓인지, 수령이 다 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바이저를 쓰고 있으니 괜찮아. 게다가 공갑을 모는 것이야 식은 죽먹기지.”
“미안해요.”
나는 다른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탈출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산야는 1~2년 안에 늙어 죽을 지도 모른다.
“왜 형제가 미안해하는 건가.”
“사과하고 싶으니까요.”
“어째서.”
산야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몸을 감은 해먹을 풀고 눈물을 닦았다. 눈을 깜빡이자 눈물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우회궤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인지 눈물은 내 오른쪽으로 떨어졌다.
“미안해요.”
“내가 더 미안하군.”
나는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기 싫어 조용히 코를 들이마시려 했지만 목이 뜨거웠다.
“내가 죽고나면 너와 구다이밖에 없을테니.”
“구다이를 우주로 던져버릴 수 없다면 제가 나갈래요.”
산야의 킥킥거리는 웃음소리. 그의 웃음소리를 듣자 나도 웃음이 나왔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를 가르쳤던 대형들은 그 감정을 형제들간의 가장 끈끈한 감정인 유대감이라고 하였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산야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들었다. 유대, 존경, 경외 그 어떤 이름을 붙이든 간에 산야는 내가 가장 아끼는 형제였다. 내가 그의 눈이 되주겠다. 적어도 그가 죽을 때까지는. 그가 나의 똥오줌을 가려주었으니, 그를 합성로로 보내기 전까지, 그가 자신의 몸도 통제할 수 없게 되더라도 내가 그를 통제해주리라 마음먹었다. 그가 죽으면 그의 단백질 모두를 내가 먹으리라.
“소노. 넌 참 특이한 녀석이다.”
“어떻게요?”
“내 평생 수많은 형제들과 부대끼며 살았지만 너처럼 눈물도 많고, 호기심도 많은 녀석은 처음이야.”
“그랬던가요.”
“항렬은 다르지만, 너와는 태반을 나눈 형제처럼 느껴져.”
“미안해요.”
나는 그 외에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미안할 것 까지는 없네.”
“그럼 뭐라고 하죠.”
“그럴땐 고맙다고 하는거지.”
“고마워요.”
얼굴이 뜨거웠다.

10일째. 우리는 마더십에 접근하고 있었다. 구다이는 계속해서 신음소리를 내며 가끔씩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입을 닥치게 하고 싶었지만 산야가 싫어할 듯 했다. 구다이가 신음소리를 내 이야기가 중단되기 전까진 산야와 나는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산야는 내가 어릴 때 어땠는 지부터 내가 자라며 저질렀던 자질구레한 실수와 사건들을 말하며 즐겁게 웃었다. 산야의 웃음소리를 듣자 나는 부끄러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산야는 나의 어린시절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의 어린시절을 모르므로, 나는 어린시절에 대해 물었다. 사실 우리의 생활이래봐야 비슷했으니 별 특별한 이야기를 들을 거리는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으므로 나는 계속해서 그에게 이야기해달라고 요구했다.
산야는 처음으로 공갑을 탔던 경험과, 미아가 되었던 경험, 전투이야기, 생활을 하며 싸웠던 이야기등을 하며 웃었다. 마더십에 접근해 구다이가 깨어나기 전까지.

 


나는 공갑의 항법컴퓨터 모니터에 떠오른 마더44를 관찰했다. 거리는 1광초. 누군가가 씹고 남긴 전병같은 모양새를 한 전장 80km의 거대한 구조체. 모래시계성운전투에 참전했던 인류의 배들 중 1/3을 후손으로 거느린 마더44였다. 미적감각은 철저히 배제한 채, 생존투쟁이라는 지상명제만을 실천하기 위한 우리 함대의 어머니. 일족의 고향.
“안전속도로 접근한다. 유도신호를 기다리자.”
그러나 우리 중에 마더44와 접촉을 해본 경험이 있는 자는 죽은 순모도밖에 업었다. 산야가 경험이 많다 하더라도 겨우 30세였고, 평균연령을 훨씬 넘겼다는 함대의 참모장 구다이도 37세였다. 우리는 지금 순모도의 말에 따라 마더44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마더십과 접촉하라고 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마더십에 접촉하기 위해 날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장래, 우리가 어찌해야 할지 궁금했으므로.
“유도신호가 없다... 어찌 된일인가.”
산야나 구다이는 나보다 훨씬 이전 항렬의 형제들이니 들은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나도 물론 역사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머니별인 지구가 파괴되었던 오래 전부터, 마더십이 우주 곳곳에 퍼져 함대를 건조하고 여자가 멸종되었기 때문에 생식능력을 잃어버린 인류가 어떻게 생존해왔는지. 나는 감이 오질 않았다.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생식능력이란 무엇이고, 모성에로 향한 순애, 존경, 그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애정. 그리고 형제들로 하여금 아무런, 눈곱만큼의 의미도 없어 보이는 싸움에 짧은 생애를 모두 바치게 만드는 경외의 대상. 형제들을 나란히 서게 만들고 죽음 앞에서 주저함을 지우는 대상.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어머니.

“이럴 수가.”

산야의 공갑이 천천히 접근해가자, 소행성의 그들에 가려져 있던 마더44로 생각되는 물체가 확대되어왔다. 유도신호가 오지 않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마더44는 무언가에 씹어먹힌 듯 허리가 뜯겨져 나가 있었고, 손과 발 부분 모두가 부서져 있었던 것이다. 전장 80km의 우주모함이 아니라, 그저 소행성의 인력에 붙들려 유영을 하고 있을 뿐인 잔해였다. 아마 우리들을 돌파한 타이탄에게 일격을 얻어 맞은 탓이겠지.

“말도 안돼!”

구다이가 입에서 침을 튀겼다. 나는 말이 안될리는 없다고 하고 싶었지만 입밖에 낼 순 없었다. 산야는 공갑을 천천히 몰았다. 자세제어용 스러스터의 분출을 최대한 숨기며, 마더44의 아랫부분이라 생각되는 접교용 덱으로 향했다. 이렇게 거대한 함과 접촉해본적은 산야도 처음일테니 최대한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구다이는 함교에서밖에 근무해 본적이 없었다. 산야도 한 평생 100톤짜리 공갑만을 몰았던 전기어사였다. 우리는 창문으로 비치는 마더44의 크기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마더십이 가지는 그 신성함의 무게까지 더해졌을지 모르겠으나.
숙련된 조타병도 아마 이것보단 더 잘해내기 힘들 정도로 산야는 능숙하게 마더44와 접촉을 성공시켰다. 마더십은 강력한 무기에 피격된 탓인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고 공갑이 그 회전에 동기화되었음을 확인하자, 산야는 매니퓰레이터를 뻗어 직접연결통신망을 열었다.
회선에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거대한 크기의 독에는 잔해들이 가득한 채 유도등들이 처량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박시설의 CCTV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순모도가 말한대로 마더십과 접촉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할 수 없다. 내부 도크로 직접 들어가는 수 밖에.”
산야가 내부도크로 공갑을 몰아가자 엄청난 수의 쓰레기들이 공갑에 부딪혀왔다. 공갑은 쓰레기들을 헤치며, 독안에 있으리라 추측되는 통로로 접근하고 있었다. 인류의 구조물이었으니 분명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순모도는 누군가가 마더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는 마더십에 남아 마더가 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확인하고 싶었다. 앞으로 우리가 어찌해야 하는 지.
마침내 우리는 독 깊숙한 곳에서 플랫폼같은 것을 발견했고, 우주복을 입은 채로 공갑에서 나왔다. 구다이는 몸이 불편했고, 산야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았으므로 내가 선두에 섰다.
마더십 안은 인간의 거주를 전혀 감안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내부통로에 간간히 붙어 있는 지도는 거대한 마더십안을 어떻게 해맬것인지만 가르쳐주었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 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허리의 케이블에 산야와 구다이를 매달고 끝없이 이어진 통로를 따라갔다. 구다이는 힘들다며 투정을 부리거나 여전히 함대를 재건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었다.
구다이의 투정들을 무시하며, 통로를 떠다니던 끝에 마더십의 구조가 그려진 지도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 키보다도 더 큰 지도에는 우리가 위치한 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마더가 위치한 “자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거대한 수직통로를 따라 1km를 가면 자궁안의 마더를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나 눈  앞에 떠다니는 잔해와 희미한 조명들, 그것도 얼마남지 않은 조명은 마더가 살아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해주었다.
우리는 말 없이 통로를 따라갔고-구다이조차도 침묵한 채- 그렇게 잔해를 헤치고 2시간여를 더 간 후에, 또다시 표지판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 표지판은 다른 것과는 달랐다.
-이곳에 들어오는 자는 일족의 어머니일지니, 세대를 넘어 영장류의 의지를 이어나가리라-
우리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끝없이 이어진 듯한 통로의 한 가운데, 얼마나 큰지 알 수 없는 문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모양의 작은 문 앞에는 알 수 없는 기괴한 글자와 기호가 잔뜩 원을 그리며 쓰여져 있었다. 그 글자들을 다 해독할 수는 없었지만 모두 같은 문자로 쓰여져 있는 것은 확신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메시지를 전하는 글자였다.

문으로 추측되는 곳에는 작은 계기판이 붙어있었고 사람의 손모양이 그려진 패널이 있었다. 구다이는 고개를 흔들었고, 산야는 앞이 보이질 않았으므로 나는 우주복 채로 손을 뻗어 패널을 만졌다. 정확하게 손모양에 맞추자, 안으로 푹하고 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천지가 뒤집히는 느낌이 들었다.
“헉!”
“무슨 일인가? 소노.”
산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내 눈앞에 있던 벽은 사라지고 우주에 홀로 떠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나와 손을 맞닿은 빛나는 형상이 있었다. 인간의 모습. 그러나 달랐다. 긴 머리, 갸름한 몸, 가슴 부분에 근육이 아니라 엉덩이 같은 살두덩이 붙어 있었고, 허리는 나보다 잘록했지만 골반이 나보다 더 두터운 존재. 빛은 차차 줄어들었고 나는 눈앞의 형상이 인간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무엇인가라는 걸 알아차렸다.
“여기까지 왔군요. 나의 아들들이여.”
“소노! 소노! 말해! 무슨 일이지!”
“나와 접촉한 이상,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잘 아리라 믿습니다.”
나는 내 몸을 내려다 보았다. 우주복을 입은 모습이 아니라, 알몸인 채 였다. 나는 눈앞의 존재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란 걸 알아차렸다. 우리 인류의 형제들에게 존재하는 배설기관인 성기가 빛나는 존재에겐 없었다. 그 대신 원래 그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거뭇한 털이 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눈 앞의 존재가 마더라는 것을.
“아들이여. 아니 내 딸이여.”
딸. 처음 듣는 단어였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봐 지금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마더와 접촉한 것인가?”
구다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아들을 전쟁터로 보냈습니다. 나는 이제 늙고 지쳤습니다. 그러니 다음의 마더가 필요합니다. 여기까지 도달한 당신들 셋. 하나는 너무 늙었고, 하나는 몸이 성하질 않군요. 그럼 당신이 내 뒤를 이을 것입니까?”
“소노!”
나는 내 머리를 누군가가 흔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눈앞의 마더에게 압도되어 있었다. 그의 존재감이 우주보다 크게 나에게 다가왔다. 뭔가 가슴속에서 잊고 있었던 감정이 솟구쳐왔다.
“알고 있습니다. 내 아들들이여. 그대들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일족을 위해서는 나머지 둘 중 하나가 유전자를 남겨야 합니다. 택하십시오. 내 딸이여. 누구의 유전자를 남길 것인지.”
나는 힘차게 손을 뺐다. 그 순간 마더는 사라졌고 주위의 풍경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소노, 정신이 드나?”
나는 산야를 돌아보았고, 구다이도 쳐다보았다.
“네. 마더와 만났어요.”
“뭐라고 하던가?”
구다이는 내 어깨를 잡아 흔들었고 나는 마더가 내게 한 말을 기억해냈다.
“나를 다음번의 마더가 될 딸이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당신 둘 중, 한명의 유전자를 남겨야 되니 선택하라고 했어요. 일족을 위해.”
산야의 입이 벌어졌다.
“그런가, 그런건가.”
“딸이 무슨 말이죠?”
산야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구다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구다이는 눈을 찡그렸다.
“아담과 이브에 대해선 알고 있지? 인류최초의 인간들. 아담은 현생인류의 조상이며, 이브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여자의 조상이다. 그 둘 사이에서 지금의 형제들이 시작되었지. 여자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오래전 여자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자매들, 이브의 딸이라고 칭했다고 하네.”
“그럼, 딸이란 아들이란 말과 동의어겠군요.”
“그렇지.”
구다이는 그 말과 함께 총을 꺼내들어, 산야의 백팩을 쏘았다.
“무슨짓입니까!”
산야는 갑자기 괴로운 듯 목을 움켜잡았고, 귀의 스피커에선 산야의 가래끓는 듯한 신음이 들렸다.
“구다이!”
나는 구다이에게 달려들었다. 눈앞이 뜨거웠다.
그러나 구다이는 내 팔을 잡고, 총구를 헬멧에 들이밀었다.
“나는 일족의 유전자를 남긴다. 적자생존, 내가 더 적합한 유전자이므로, 산야는 배제되어야 해. 그리고 네가 마더가 되는 것이다. 나는 함대의 남은 최고 지휘관이므로...”
“세명밖에 남지 않은 함대가 무슨 소용이 있단겁니까?”
귀에서는 계속해서 산야의 컥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산야의 몸이 빙글빙글 돌며 떠올랐다. 우리는 허공에 두둥실 떠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멍청아 잘들어! 그게 우리 인류의 숙명이야! 대를 이어가는 것! 평생 공갑이나 몰던 놈이 대형이 될 순 없어! 아버지가 될수도 없고! 장차 일족이 부활하기 위해선 내 유전자를 남겨야해!”
“사악한 인간!”
나는 구다이의 오른손을 잡아챘다.총이 발사되었고 불꽃이 튀겼다. 그러나 구다이는 내 왼손을 붙들고 있었고 우리는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래! 살아남기 위해선 교활해야 한다. 그리고 불굴의 의지도 가져야지. 그 점이 내가 더 우성유전자라는 증거야. 살아남아 타이탄을 구축하고 온 우주를 인류의 유전자로 뒤덮기 위해선 사악해야 해! 아버지가 되기위해선 산야도 적이야! 타이탄과 같단 말이야!”
구다이의 얼굴이 가까이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허벅지의 총에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넌 이브가 된다! 난 아담이 되고!”
그러나 구다이는 그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섬광이 번쩍였다고 생각되는 순간 구다이의 헬멧이 깨졌기 때문이다. 나는 섬광이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산야가 총을 뻗은 채로 떠 있었다.
“산야!”
산야는 말이 없었다.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끝까지 나를 구해주다니. 나는 눈을 까뒤집고 입을 벌린채 죽은 구다이를 밀쳐내고 산야에게 다가갔다.
“산야! 산야!”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 밖에 없었다. 산야를 살려야 한다. 내가 마더로서 유전자를 고른다면 산야다. 그 외에는 생각할 수 조차 없었다. 나는 꼼짝하지 않는 산야를 잡아 끌고 다시 자궁의 문앞 패널로 헤엄쳐 갔다. 그리고 손을 뻗어 패널에 닿았다.
“될게요! 마더가 될게요! 이 사람을 선택하겠어요!”
다시 눈앞은 우주로 변했고, 마더가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요. 안타까운 아들들. 왜 서로를 죽이는 건가요.”
“제발, 이 사람을 살려줘요. 공기가 공기가 없어요! 빨리! 안으로 우릴 들여보내줘요!”
“마더가 되겠다는 말인가요?”
“될게요! 된다구요! 어서 급해요!”
“아아... 내 딸이여...”
나는 눈앞이 환히 빛나는 것을 느꼈다. 온 천지가 빛으로 변해갔다. 빛이 가득했다. 그리고 무언가가 내 몸을 잡아 끄는 것을 느꼈다. 나는 눈을 감았고,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그러나 산야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이내 곳,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눈 앞은 하얬다. 둥근 반원형의 방안에 푹신한 침대위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산야가 누워 있었다. 발가벗은 채로.
“산야!”
나는 손을 뻗어 산야의 얼굴을 만졌다. 바이저는 벗겨지고 없었다. 건장한 형제들의 징표, 두텁게 각이 진 어깨와 가슴, 울퉁불퉁한 복근, 무성한 비부와 성기, 제멋대로 털이 자란 굵은 다리까지. 내가 아는 산야가 맞았다. 그러나 다리와 손이 하나 씩밖에 없는 산야.
나는 문득, 내 몸이 어색하다는 걸 느꼈다. 중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일어나 앉아보았다. 거울을 찾아보려 했지만 거울이 없었으니 나는 내 몸을 만졌다. 머리가 어깨까지 자라있었고, 가슴에는 살덩이가 붙어 있었다. 젖꼭지는 이전보다 부풀어 있었다. 다만 피부는 털도 별로 없이 매끈하게 되어 있었다.
“여긴 어디지?”
“정신이 들어요?”
산야가 몸을 일으켰다. 건강해 보였지만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듯 나와 눈을 마주치질 못했다.
“형제는 괜찮아?”
산야가 손을 뻗어 내 가슴의 살덩이를 만졌다. 우악스럽게 잡았던 탓인지 아픔을 느꼈다. 그러나 아픔보다 부끄럽다는 감정이 생겨났다. 나는 산야의 손을 밀쳐내고 가슴을 어루만졌다.
“전 괜찮아요.”
“여긴 어디야?”
“아마 마더십의 자궁인 것 같아요. 중력이 있고, 공기가 있어요.”
“그런가, 나는 구다이가 내 백팩을 쏴서 죽는 줄만 알았는데.”
“하지만 나를 구해줬잖아요.”
“그랬지.”
“죽는 줄 알았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나는 웃었다. 그러나 산야는 앞을 볼 수가 없었다. 그 생각이 미치자, 눈물이 나왔다.
“지금 울고 있는거야?”
“웃고 있어요.”
“내 귀가 잘못된 거로군.”
“기뻐서 눈물이 나는 거죠.”
산야는 내 눈물을 닦으려는 듯 내 눈가에 손가락을 대었다.
“이상해 형제. 가슴에 그 살덩어리는 뭐였지?”
“에 그러고 보니...”
나는 마더의 모습을 떠올렸다. 가슴에는 마더의 것과 같은 살덩어리가 두 개 붙어 있었다. 그리고 다리 사이에는...
“악!”
“왜그래?”
“제 성기가 없어요!”
뭐라고 산야는 내 몸을 더듬어 가랑이 사이를 만졌다.
“정말 없어. 어떻게 된거야?”
나는 성기가 없으면 소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내 가랑이를 더듬는 산야의 손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괜찮아?”
나는 산야의 손을 치우고 바로 앉았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마더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나는 요람안의 시설을 먼저 떠올렸다. 인큐베이터안에서 갖가지 선에 연결된 채 배양액속에 뜬 아이들. 유전자를 받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지? 일족의 재건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반원형 돔안에는 온통 하얀색 일색이었고, 몇 개의 문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아니 걸어가려 했다.
“어랏.”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이상했다. 가슴에 살이 붙고, 가랑이 사이의 성기가 사라진 것 만으로 균형을 잡기 힘들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울이 있다면 내 모습을 볼 수가 있을 텐데.
“무슨 일이야?”
산야는 나를 향해 물었다. 그가 내게 다가와 일으켜주길 바라는 마음이 약간 있었지만, 그는 다리 하나를 잃어버렸다. 내가 그의 다리가 돼주어야 한다.
‘익숙하진 않겠지만 익숙해져야 해요. 그것이 앞으로 당신이 살아갈 몸이니까.’
나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마더의 목소리. 그러나 금새 알아차렸다. 마더의 목소리는 내 목소리였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내 목소리. 산야가 그렇게 말할리는 없었다.
‘나는 마더. 당신들의 어머니. 이제 내 임무를 마치고 당신이 뒤를 이어야 합니다. 몇가지 예기치 못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별것은 아닙니다.’
‘어떤 문제란 말이죠?’
‘지금부터 제말을 잘 들으세요. 마더십의 자궁은 당분간 제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아니, 마더십 자체가 심하게 손상을 입었으니까요. 그러나 걱정마세요. 몇 년이 걸릴 지는 모르나, 언젠가 마더십은 복구됩니다. 자궁과 동기화 되는 것은 그때로 미루고 지금은 유전자를 합성할 때입니다.’
‘어떻게 유전자를 합성한다는 것이죠? 앞으로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리고 제 몸은 어떻게 된거죠?’
“소노, 왜 말이 없어?”
“아니, 지금 마더랑 대화중이예요.”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산야를 제지했다. 어색했지만 다시 똑바로 서서 허공을 쳐다보았다. 눈이 닿는 곳에 마더가 있을리는 없었지만.
‘내게는 인류의 딸부터 딸에게 전해지는 지혜와 지식이 있습니다. 이제 그것들은 당신의 것입니다. 그것은 마더와 완전히 동기화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니 걱정마세요. 이 셀터안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설비가 되어 있어요. 그리고 조용한 곳에서 마더십이 회복하게 되면 그대는 아이들을 다시 우주로 보낼 수 있어요.’
‘그럼 산야는 어떻게 되는 거죠? 죽게되는 건가요?’
나는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산야를 먼저 떠나보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언젠가는 떠나겠죠. 지금 마더안에 남은 설비와 에너지로는 당신이 마더가 되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그러나 걱정마세요. 이곳 [에덴]에서는 그대들의 유전자는 안정적이니까, 저 아들이 금방 늙어죽는 일은 없을테니까. 그대들은 충분하다고 여겨질 때까지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될거예요.’
‘두 눈을 뜨게 해줄 순 없나요?’
‘지금으로는 불가능해요. 자궁의 설비는 당신이 마더가 되게 하는 것만으로도 겨우였으니. 그러나 그 일은 훗날로 미루도록 하고, 지금은 더욱 중요한 것이 있어요.’
나는 갑자기 내 몸이 뻗뻗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번 단 한번이예요. 그리고 나는 사라집니다. 뒤를 부탁해요.’
‘예에?’
내 몸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산야와 마주보고 침대에 앉게 되었다. 내 손은 산야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소노, 왜이래?”
“나...나도 몰라요.”
산야의 얼굴을 쓰다듬은 내 손은 산야의 목과, 쇄골 두터운 가슴을 쓰다듬었다. 산야는 두 손을 뒤로 지탱한 채 몸을 뒤로 기울였다. 마더는 나를 조종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더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몸을 이끌었고, 나는 얼굴을 산야에게 갖다 대었다. 산야의 입김이 느껴지는 곳까지 다가간 나는 앞이 보이질 않는 산야의 휘둥그레진 표정이 무척 재미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입을 맞추었다.
‘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것들을 반드시 잘 기억해놔야 해요.’
입술이 입술을 부비는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이 몸이 뜨거워졌다. 목 뒤에서 등을 타고 허리로 내려가는 느낌. 나의 대형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야. 그가 입술을 옴짝달싹할 때마다 기분좋은 느낌이 몸속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점점 산야가 나를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나는 뒤로 물러나며 푹신한 베개위로 몸을 뉘었다. 내 손끝은 산야의 까칠한 턱선과 가슴을 쓰다듬으며 점점 아래쪽으로 향했다. 나는 마더가 조종하는대로 몸을 가만히 맡겼다. 그러나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진짜였다.
“소노, 뜨겁다... 이해할 수가 없어. 이 느낌은...”
“나도 그래요 산야.”
산야는 팔을 짚으며 나를 내려다 보았다. 그의 눈빛은 흐릿했다.
“어쩐지 네 모습을 봤으면 해. 넌 여자가 되어버린거니? 마더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나는 아무말 하지 않았고, 마더는 내 손을 점점 아래로 이끌었다. 손에서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산야의 사타구니, 성기가 팽팽해져 있었다. 불처럼 뜨거운 성기를 내 손이 쓰다듬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이 실제로 터지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졌다. 그러나 내 손이 산야를 쓰다듬을 때 마다 그의 콧김이 뜨겁게 뿜어져 나왔다.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아....”
산야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내 가슴팍에 고개를 숙이는 가 싶더니 내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도 알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해아할 지’
마더는 그렇게 말했다. 내 손은 산야의 불알과 성기를 가만히 쓰다듬었고, 그럴 때 마다 산야의 낮은 탄식이 전해졌다.
“소...소노... 몸이 뜨겁다.”
“저두요.”
산야의 목에 손을 두르자, 그는 뭔가 성급한 듯한 느낌으로 내 배꼽 아래에 손을 대었다. 키작은 털로 덮인  내 사타구니를 두어번 어루만지더니 내 배 위를 그의 딱딱해진 성기가 찌르는 듯 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산야는 내게 계속해서 입을 맞추더니 내 다리를 더 벌리게 만들고, 자신의 성기를 내 사타구니에 가져다갔다. 무엇을 하려는 거지, 내 다리에 오줌을 쌀 생각인가라는 생각에 미치는 순간 산야의 엉덩이를 쓰다듬던 내 손이 갑자기 꽉 쥐어졌다. 그리고 나는 몸이 꿰뚫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산야와 나는 비명을 질렀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생전 처음. 최초로 느껴보는 감정.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지러움과 아픔, 그리고 뜨거움이 뒤섞인 채로 몸안에서 폭발하는 것 같았다. 눈 앞에서는 산야가 괴로워하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오... 산야. 산야가 이렇게 괴로운 표정을 하고 있다니. 그러나 그 얼굴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내 몸 안에서는 불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기분좋은 감정이 터져나오는 것 같았다.
‘자 그를 받아들이는 거에요. 천천히, 그렇게.’
내 손은 산야의 몸을 계속해서 어루만지고 있었다. 산야는 허리를 앞뒤로 슬슬 움직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나도 고개를 뒤로 젖히고 헐떡였다. 한껏 숨이 들이쉬어지며 이상한 감정이 폭발해갔다. 엉킨 실타래가 한번에 풀리는 느낌.
“산야. 내 몸이 이상해요.”
“나...도 그래.”
산야는 계속해서 나를 찔러왔다. 그럴 때 마다 내 몸은 뒤로 밀렸고, 나는 그저 격앙된 채 계속 산야의 이름을 불러댈 뿐이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갔다.
“소노! 소노!”
“산야!”
우리 둘은 애타게 서로를 불렀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 아니 그것밖에 할 말이 없었으니까. 그 이상의 것은 생각나질 않았다. 나는 아래 위가 뒤집히는 느낌을 받았고 거기에서 생각하기를 멈췄으니까. 마치 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은 쾌감이 온몸으로 퍼져나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나는 그 느낌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더의 마지막 목소리 까지.
‘행운을 빌어요. 내 딸. 나머지는 아담에게 맡겨요.’


며칠째가 되었는 지 모르겠다.
나는 다시 내 몸에 대한 통제권을 얻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분좋은 행위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가슴속에 무한히 충만하는 그 감정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퍼지는 전율, 그리고 안도감과 한편으로는 애타는 듯한 부족함. 기쁨과 슬픔이 혼재한 감정 속에서 끊임없이 울고 웃었다.
나는 계속해서 산야를 불렀고, 산야는 그럴 때 마다 답해주었다. 우리는 침대위에서 뒹굴었다. 표현하자면 산야는 몇 번이고 나를 찔러왔고, 나는 몇 번이고 찔렸다.
벽에 난 문에서 나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을 먹어 허기를 채우고, 우리는 또 서로를 원했다. 그저 계속해서 원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서로를 원했고, 원하고 싶었으니까. 마치 목마른 느낌이 채워지지 않듯 나는 산야를 안았고 산야에게 입을 맞췄다. 산야 또한 내 몸을 하나 하나 알아나갔다. 그제서야 우리는 알게 되었다. 우리가 바로 새로운 아담과 이브란 것을
이곳이 몇 번째의 에덴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만족스러웠고, 앞으로의 일은 당분간 미뤄두기로 했다. 우리의 에덴은 아주 깊은 우주에서 미래를 위해 당분간 잠잘테니까. 그동안 나는 몇 번이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산야와 하나가 될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마더십과의 동기화가 이루어지고나면, 나는 나를 이브가 되게 한 마더십의 설비를 이용해 산야의 눈을 트이고, 다리를 붙여줄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산야가 다시 나를 볼 수 있다면. 나는 더욱 기쁠 텐데. 앞으로 인류가 타이탄에 승리하기 까지 몇 번의 에덴이 있을지, 지금까지 몇 번의 에덴이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는 산야를 원하고, 산야는 나를 원한 다는 것이다. 지금은 내게 이곳이 우주였고, 산야가 내 전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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